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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일) 길위의 가나안교회, 동대문, 낙산, 연지동, 미와십자가교회 본문

가나안교회

2018.12.16(일) 길위의 가나안교회, 동대문, 낙산, 연지동, 미와십자가교회

요수엘(기윤실맨) 2018. 12. 17. 16:04

오늘 길위의 가나안교회는 동대문교회 터 부근과 낙산 성벽, 그리고 종로5가 연지동,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 미와십자가교회 일원이었다.

<손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오늘의 일정 안내>

<안내> 길위의가나안교회 모임

1. 가나안신자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이번주에는 길위의가나안교회로 모입니다. 특히 이번주 골목길순례는 동대문 주변을 순례할 예정입니다. 동대문(홍인지문, 동대문역1번출구) 앞에서 만나 옛동대문교회와 옛이화여대병원 그리고 동대문역사문화관 등 그 주변의 골목길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2. 특히 겨울철이라 실외 골목길은 최소로 하고 대신 박물관을 좀 자세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그래도 야외활동이니 만큼 마스크 장갑 목도리는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순례를 먼저 마친 뒤, 주일성찬예배는 대학로 부근에 위치한 미와십자가교회 티룸(담임 오동섭 목사)에서 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샬롬!

1. 일시: 2018.12.16.일. 오후2시

2. 모이는 장소: 동대문역 1번출구(홍인지문)

3. 순서

1) 순례/안내: 옥성삼 박사

2) 성찬예배/집례: 오동섭 목사(5시경)

3) 뒷풀이 식사 & 가나안교회평가회

가나안교회섬김이 손원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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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손원영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남겨 주신 모임 후기

<감사> 길위의가나안교회 후기

1. 오늘도 무위이화의 기적은 계속되었다. 눈이 오는 궃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옥성삼 박사님의 친절한 안내로 10여명의 가나안 언님들이 동대문주변 골목길을 걸으며 선배 신앙인들의 발자취를 살폈다. 참 즐겁고 유쾌한 하루였다. 옥박사님, 감사합니다!

2. 한국감리교회의 긴 역사를 이어온 동대문감리교회와 이화여대동대문병원이 서울도성복원과 맞물려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 참으로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그리고 "1978년"으로 상징되는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 중 중앙성결교회의 이전이 흥미로웠고, 특히 종로5가 주변 2만 3천 여평의 드넓은  미국북장로교회 미션스테이션이  조각조각 찢겨져 매각된 이야기는 큰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3. 개인적으로 한양도성박물관과 낙산의 성벽산책도 참 좋았다. 서울에 수 십년을 살면서도 처음으로 낙산에 들른 것이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는데! ㅋ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도 인상적! 

4. 끝으로 미와십자가교회에서 정성껏 성찬예배로 마무리! 함께 한 예술목회 동역자 오동섭 목사님께 감사하다. 특히 맛난 식당에서 뒤풀이 시간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허심탄회하게 가나안교회 평가회에 참여해 의견을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홧팅!!

5. 또한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은 연동교회에 방문 중 정말 우연히 30년 만에 대학 동아리 선배 두분을 만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순례객에게 주신 주님의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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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오늘 모임에 함께했던 이강선 언님이 페이스북에 남긴 소감

모퉁이를 돌았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세상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우리는 건물과 차로 뒤덮인 회색 콘크리트 세상에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바빴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텅 비었더랬는데. 이곳에는 억새가 물결쳤다. 언덕이 달려 내려왔다. 이곳에서는 밝은 황색의 억새들과 성곽의 흰 담벼락 때문에 과거로 들어선듯 했다. 사실 그러했다. 그곳에서는 동대문의 옆구리가 보였다. 잿빛 기와 밑으로 건물이 보였고 수문장이 올라다녔을 법한 반월형의 통로가 보였다. 동대문은 지명이다. 동대문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닿는 곳이고 동대문은 서울 사대문의 하나이며 그 옆으로는 청계천과 엄청난 규모의 의류 시장들이 있다. 그것이 동대문인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곳은 그 동대문이 아니었다. 네모난 건물은 여전했어도, 차들은 쉬임 없이 오갔어도 한줌의 공간 때문에 시공간이 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랬다. 우리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안내자는 풀밭 가운데 놓인 둥그런 철판 끝을 살짝 밟고서 두리번거리는 우리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그가 내놓은 숙제는 1978년, 그는 그 숫자를 기억하라고 주문했는데 그 해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78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동판에 새겨진 볼록그림은 보구여관 건물과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 병원 건물이었다. 보구여관이라니. 여관이 왜 라는 생각은 한자를 떠올리자 사라졌다. 여자 '여', 집 '관'일터이니 '여성의 집'이라는 뜻이었다. 굳이 여성의 집이라고 해야 했던 이유는 여성만을 치료하는 곳이었으므로 이런 이름을 붙였던 것 아닐까. 당대의 남녀 차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1887년 감리교에서 보통 여성을 위한 병원을 이곳에 세웠다는 뜻이었다. 그 병원이 2008년 사라졌다. 안내자는 사뭇 비장한 어조로 교회를, 정부를 질타했다. 성곽복원은 꼭 필요하다 해도 건물 하나쯤은 남겨두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새것은 옛것이 지닌 자취를 갖고 있지 않다. 새것, 특히 새 건물은 그 건물에 살았던 이들이 쌓아올린 수많은 이야기를 날려버린다. 새것에는 세월이 만들어낸 터무니, 그 자리에 새겨진 자취가 없다. 

동대문 성곽공원 황색 언덕 끝에는 한양도성박물관이 서 있었다. 어딜 보나 아파트 같았다. 바깥 한켠에 마루를 세워 표지를 삼은 회색의 멋없는 사각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달라졌다. 들어서는 초입에 서울 전체의 모형이 있었고 벽은 옛지도와 설명과 사진으로 가득했다. 연신 설명을 읽었으나 그러나 안다. 저 안내자가 없었더라면 이 생생한 성리학 철학과 궁궐과 도시를 세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한낱 조형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생생함은 기록이 아닌 말에서 나온다. 손짓으로 말짓으로 천천히 설명해 나가는 이야기꾼의 열정에서 조상의 지혜가 살아나고 역사가 생생해지며 판단을 잘못한 관리자들의 행태에 비분강개하게 된다. 혹은 자리를 이용해 욕심을 채운 모리배들을 욕하게 된다. 기록에서 삶을 끌어내는 것은 읽는 이의 능력이다. 

백악산·낙산·목멱산(남산)·인왕산의 내사산. 우리는 낙산 성곽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름을 알면 장소는 생명을 띤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면 장소에는 삶이 새겨진다. 자취가 새겨지고 이야기가 다져진다.

장, 감, 성 설명을 들으면서 호롱불 모양으로 십자가 탑을 세웠다는 중앙교회를 지났다. 그리고 안내자는 1978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암문을 통해 성곽 밖으로 빠져나갔다. 성벽은 구간마다 달랐다. 자연석 그대로 쌓은 태조 시대, 옥수수알처럼 쌓아올린 세종시대, 반듯한 네모로 잘라 쌓은 숙종시대 그리고 순조시대. 오래된 돌들은 온통 검었고 그 위 혹은 주변에 복원해 쌓아올린 돌들은 희어 대번에 차이가 났다. 비탈에 붙여서 지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벽에 기댄 지장암을 지나자 다시 암문이 나타났다. 암문 안쪽 성곽안쪽 풍경은 바깥과 달랐다. 안내자는 508숍이라는 옛 건물 앞에서 쉬어가자고 제안했다. 의자와 탁자가 갖추어진 쉼터는 제법 넓었고 누군가 따스한 음료를 바로 그 508숍에서 사왔다. 그리고 일행은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택배가 쉬울까. 냉장고를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짜장면을 배달해줄까. 

차가 다닐 수 없는 이곳은 서울성곽안이라는 유명세 때문에 월세는 비싸도 살아내기는 쉽지 않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때문에 원래 살던 이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낙후한 건물을 가리려는 목적으로 곳곳에 벽화를 그려넣는다. 그림은 위안을 준다. 바쁜 마음을 쉬어가게 한다. 그 벽화를 보러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가게가 생겨난다. 그래서 원래 살던 이들은 떠난다. 동네는 부자가 되지만 거주하는 이는 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떠나는 현상.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는 상류층, 신사들을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젠트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이 젠트리피케이션은 동네 건물들의 세가 오른 탓에 가난한 원주민이 쫒겨나는 현상을 뜻하게 되었다. 이화마을은 바로 그런 곳이 되었다. 예전에 보던 그림들, 계단을 가득 채웠던 물고기 그림들은 사라졌다. 주민들은 이제 벽화를 지운다. 한때 그토록 반겼던 그 벽화들을.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벽을 지나 반원으로 휘도는 장소에 왔다. 벽에는 낙타가 그려져 있었다. 안내자가 물었다. "여기 낙타가 그려진 이유를 아시죠?" 낙산은 낙타산의 준말이라고 했다. 이어 안내자는 낙산 마을에는 봉재공장이 많다고 덧붙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의류 가게 즐비한 동대문이 바로 저기인 걸. 

종로 5가 이만 삼천평이라는 그 넓었던 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날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저 넓은 땅이 한때는 북장로교 소유였다고 한다. 그 땅들은 조각조각 찢겨 팔려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라진다. 부끄러운 듯 은밀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탑. 회화나무 계단길. 나머지들, 자투리들이 남아 있는 곳. 교회는 어쩌다 자신들의 역사를 이득에 내주었던 것일까. 

내 삶은 내 이야기다. 한 집단의 삶은 그 집단의 역사다. 한 국가의 삶은 그 국가의 역사다. 그 이야기가 담긴 건물을 허문다는 것은 역사를 허문다는 것과 동일하다. 역사가 사라진 장소에 새로이 옛건물을 복원한다고 해서 그 역사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바늘 하나, 문 한짝, 벽돌 하나에도 숨결이 남아 있는 법,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에서는 물결이 일고 그리고 끓어오르는 법이다. 3.1운동에 동참한 회화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문서를 나무 구멍에 숨길 생각을 해낸 소녀들이 자랑스러워지고 새삼스럽게 벅차지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 그 인상 깊은 나무가 무시당하듯 건물 사이에 놓여 있음을 안다면, 역사 깊은 옛 건물이 엄청난 크기의 새 건물에 짓눌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음을 안다면 그마저 언제 철거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 .

터무니가 없는 변화에는 혼이 없다. 

미와십자가교회(예장통합) 레이첼의 티룸에서 예배를 드렸다.

http://www.godpeople.com/?C=1245

http://www.nocutnews.co.kr/news/467816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056980

아래는 오늘을 위해 준비하신 손목사님의 글 : 

균형추구의 공동체-이콘을 권함(20181208).hwp

미와십자가교회 오동섭목사님께서 축도로 예배 마지막 순서를 맡아 주셨다.

미와십자가교회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eautyncross68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32

레이첼의 티룸이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마포갈비집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난 6개월간의 길위의 가나안교회 평가회를 가졌다.

손원영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 가나안교회 평가회 관련 2개의 글을 포스팅해 주셨다.


<가나안-평신도들에게 감사함>

<알림> 2018년도 가나안교회 자체평가 결과 종합


*아래는 서정희 언님이 찍으신 후 편집한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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